이번 글에서는 100년 전 ‘여성’ 관련 기사와 오늘의 젠더 이슈 비교를 해보려고 합니다.
중점적으로 볼것은 여성의 참정권 그리고 교육, 사회활동에 대한 과거 시각과 지금의 변화입니다. 어떻게 변했을까요?
1920년대 신문 속 ‘여성’은 어떻게 다뤄졌을까?
1920년대 조선 사회는 외세의 영향 아래에서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오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신문에 등장하는 여성 관련 기사들을 보면, 당시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여성 교육’입니다. 1920년대 중반 동아일보, 조선일보에는 “여학교 입학자 수 증가”, “신여성의 출현”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1923년 4월 15일자 『동아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여성도 문장을 배워야 인격이 성장하고, 가정의 질서가 바로 설 것이다.” 이러한 문장은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교육의 목적을 개인의 자아실현보다는 가정 내 역할 수행으로 한정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같은 해에는 기혼 여성의 중등교육 등록자 수가 급증했다는 기사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 ‘현모양처’가 근대 여성의 이상적 모습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1920년대 후반에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매일신보』에서는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신여성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여성의 사회 진출을 다루었는데요, 기사에서는 여성 노동자의 근무 태도나 복장에 대한 평가가 중심이었고, 근로 환경이나 임금에 대한 문제는 부차적으로 다뤄졌습니다.
이 시기의 신문 기사들을 보면, 여성의 ‘사회활동’ 자체는 점차 늘어나고 있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성 역할에 기반한 평가와 기준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삶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 범주를 벗어나려는 여성들은 흔히 ‘신여성’이라는 낯선 존재로 불리며 양면적인 시선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젠더 이슈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202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은 지난 100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이 단순히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 배경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노력과 사회적 투쟁이 존재합니다.
먼저 참정권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조선 시대 여성은 투표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는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정치적으로 미약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여성들도 남성과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으며, 국회의원, 장관, 지자체장 등 고위직에도 여성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수치상 참여’와 ‘실질적 권한’은 다르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여전히 여성 정치인의 비율은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여성의 목소리가 사회 전반에 골고루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교육 부문에서도 과거와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여성 대학 진학률은 이미 남성을 넘어섰고,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 전문가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나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의 비율이 급격히 낮아지는 유리천장 현상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또한 젠더 이슈는 오늘날 더욱 복잡하고 세분화되어 논의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여성과 남성 간의 비교를 넘어서, 성소수자, 싱글맘, 워킹맘, 비혼주의자 등 다양한 삶의 형태와 그 안에서의 차별 문제가 함께 논의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리부트 페미니즘’, ‘탈코르셋 운동’, ‘디지털 성범죄’, ‘생리공결제 도입’, ‘여성 전용 안전공간’ 같은 주제들이 청년 여성들 사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런 이슈들이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사회가 여성의 권리를 더 이상 ‘예외’나 ‘보호 대상’이 아닌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남았나
100년 전 신문에서 ‘여성’은 주로 가족의 일부로, 어머니이자 아내로, 그리고 순종적인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사회 활동을 시작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신여성’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구분하며 낯설게 대했던 반면, 오늘날 우리는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더 이상 단일한 기준으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난 100년은, 여성들이 사회의 다양한 편견과 벽을 깨뜨려 나가는 ‘투쟁의 시간’이었습니다. 여성 참정권이 법적으로 보장된 이후에도, 사회의 암묵적인 배제와 무시는 여전히 존재해왔습니다.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유리천장’, ‘육아와 일의 병행’ 같은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입니다.
한편에서는 젠더 이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욱 격화되며, 역차별이나 혐오 표현 등 새로운 갈등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여성 이슈는 더 이상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와 구조, 인식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이 공공정책이나 기업 문화에서도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으며, 언론도 젠더 이슈를 다룰 때 더 섬세한 언어와 시각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여성 관련 기사’가 곧 ‘여성 전용’으로 제한되었다면, 이제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이 이슈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곧, 100년 전 신문에서 ‘신여성’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던 이들이 오늘날엔 ‘모든 여성’이 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신문은 그 시대를 기록하는 가장 생생한 증거입니다.
1920년대의 신문을 들여다보면, 여성이라는 존재가 사회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신문을 보면, 우리가 그 시간 속에서 얼마나 멀리 걸어왔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와 자유는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과거를 마주하며 오늘의 변화를 돌아보는 일은, 단지 역사를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고, 사회가 더 건강하고 평등하게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젠더 이슈에 대해 생각할 때, 100년 전 신문에 실린 한 줄의 문장이 떠오릅니다.
“여성의 배움은 가정의 질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완성을 위한 것이다.”
이 문장은, 당시에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진리로 들립니다.
그리고 그 당연함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여성들이 지난 세기를 걸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